
작년에 어떤 종목을 5만원에 처음 샀다. 그 뒤로 주가가 4만 3천원까지 떨어졌는데, 나는 계속 "5만원에 샀으니까 5만원은 넘어야 팔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사 실적이나 업황이 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산 가격이라는 숫자 하나에 몇 달 내내 매달려 있었던 셈이다.
나중에 행동경제학 책을 읽다가 이게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 접한 숫자가 이후 판단의 기준점이 돼서, 그 숫자에서 벗어난 정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내가 산 가격은 그냥 내가 매수 버튼을 누른 순간의 시장 가격일 뿐인데, 나는 그 숫자를 마치 그 종목의 '진짜 가치'인 것처럼 붙잡고 있었던 거였다.
문제는 이 닻 때문에 정작 봐야 할 걸 놓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몇 달 사이 회사는 신사업 진출을 발표했고, 분기 실적도 예상보다 잘 나왔다. 객관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살 만한 상황이었는데, 나는 "본전 회복"이라는 숫자에만 갇혀서 이런 변화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다. 결국 주가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 뒤로는 종목을 다시 볼 때마다 "지금 이 가격에 처음 산다면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습관을 들였다. 내가 얼마에 샀는지는 완전히 지우고, 지금 시점에서 그 회사가 여전히 매력적인지만 따져보는 방식이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매수가라는 숫자 하나에 판단을 통째로 맡기는 일은 줄었다.
오늘 얘기를 정리해보면
- 5만원에 산 종목이 4만 3천원까지 떨어지자, 실적이나 업황 변화와 상관없이 "5만원은 넘어야 판다"는 생각에 몇 달간 갇혀 있었음
- 이 현상이 처음 접한 숫자가 판단 기준이 되는 '닻내림 효과'라는 걸 행동경제학 책을 읽고 알게 됨
- 매수가에 집착하는 사이 신사업 발표와 실적 개선 같은 실제 변화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음
- 이후로는 "지금 처음 산다면 살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매수가를 지우고 판단하는 습관을 들임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매매 경험과 행동경제학 개념을 엮어 정리한 것이며, 특정 종목이나 매매 전략을 추천하는 글이 아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 하에 신중히 결정하시길 권한다.
이 글을 쓰는 저는 5년간 온라인 판매 사업을 직접 운영하며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해왔고, 개인적으로 예금·주식·ETF를 포함한 자산 관리를 여러 해 이어오고 있습니다. 투자나 심리 관련 전문 자격증은 없으므로,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 공유로만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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