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판 상담을 하다 보면 글자를 최대한 크게, 색깔도 화려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이런 요청을 제일 많이 하는 업체는 부동산 이죠) 눈에 띄어야 손님이 들어온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막상 그렇게 만들어놓고 보면 오히려 잘 안 읽히는 간판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가독성을 결정하는 건 글자 크기만이 아닙니다. 글자체가 너무 화려하거나 획이 얇으면 멀리서 봤을 때 뭉개져 보이고, 배경색과 글자색의 대비가 약하면 크게 만들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두꺼운 서체에 배경과 확실히 대비되는 색을 쓰는 쪽이 오히려 더 잘 읽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판은 보는 거리와 각도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차도에서 지나가며 보는 간판인지, 보행자가 가까이서 보는 간판인지에 따라 적당한 글자 크기와 위치가 달라지는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크게만 만들면 오히려 균형이 깨져 보이기도 합니다.
시안 작업을 할 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로 화면에서 보면 괜찮아 보이던 디자인도, 실제 사이즈로 출력해서 멀리 떨어져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안 단계에서부터 실제 설치될 크기를 기준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습니다.
화려한 색을 여러 개 섞어서 만든 간판이 오히려 시선을 분산시켜서 정작 중요한 상호명이나 업종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도 여러 번 봤습니다. 여백을 충분히 주어 메인 문구에 집중을 시킨다거나, 포인트가 되는 색은 한두 가지로 좁히고, 나머지는 차분하게 정리하는 쪽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간판이 됩니다.
결국 간판은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 멀리서도 뭐라고 쓰여있는지 바로 읽히는 게 먼저입니다. 글자를 무조건 키우고 색을 화려하게 쓰기보다는, 보는 거리와 각도, 대비, 여백등을 먼저 고려해서 디자인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간판·현수막·배너 관련 일을 10년 넘게 해온 사람입니다. 옥외광고 자격증과 그래픽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시공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것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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