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채권은 은퇴 앞둔 부모님 세대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0대에 채권을 들고 있으면 수익률을 스스로 깎아 먹는 거라고 믿었죠. 실제로 2023년, 2024년 미국 증시가 랠리를 펼치는 동안 제 계좌에서 TLT 비중은 계속 눈엣가시 같았습니다. 주식은 20% 넘게 오르는데 채권은 제자리걸음이었으니까요.
생각이 바뀐 건 2025년 여름, 반도체주 조정으로 코스피와 나스닥이 동시에 흔들리던 며칠 때문이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제 주식 계좌는 -8%를 찍었는데, TLT를 포함한 채권 비중 덕분에 전체 포트폴리오 손실은 -4%대에서 멈췄습니다. 숫자로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며칠간 잠을 설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30%였다는 걸 그제야 체감했습니다.
레이 달리오의 올웨더 포트폴리오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채권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자산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보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보험료를 아깝다고 안 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채권을 그렇게 재정의했습니다.
물론 모든 채권이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TLT(20년 이상 장기 국채)를 선택한 이유는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만큼 주식이 폭락할 때 반대 방향으로 크게 움직여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5년 여름 조정장에서 TLT는 주식이 빠지는 동안 오히려 2% 넘게 올랐습니다.
다만 최근 금리 변동성이 커지면서 채권도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채권 비중을 고정된 숫자로 못 박기보다, 매년 1월에 한 번씩 제 나이와 금리 환경을 보고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30%가 저에게 맞는 숫자지만, 5년 뒤에는 다른 숫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확신은 없습니다. 채권 비중을 늘린 이후 제 수익률이 시장 평균보다 낮아진 구간도 분명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최고의 수익률보다, 큰 하락장에서도 패닉 매도를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게 제가 채권을 계속 들고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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